암 사망 위험 37% 낮았다? 항우울제에서 발견된 뜻밖의 연구 결과
암 환자의 생존 가능성과 관련해 예상하지 못했던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항암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우울증 치료에 사용해 온 약물이 주인공입니다.
2026년 9월 29일 국제 의학 학술지 PLOS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 특정 항우울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복용한 암 환자들이 다른 종류의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 환자들보다 낮은 사망 위험을 보였습니다.
연구에서 계산된 상대적인 사망 위험 차이는 약 37%였습니다.
암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발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제가 정말 암 치료 효과까지 높여주는 것일까요?
이번 연구가 무엇을 확인했고, 아직 무엇을 증명하지 못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1. 암 환자 3,134명을 분석했더니 나타난 결과

연구를 수행한 대만의 천포황(Po-Huang Chen) 등 연구진은 국제 의료정보 네트워크에 축적된 진료기록을 이용했습니다.
분석 대상은 면역관문억제제라는 면역항암제 치료를 시작한 고형암 환자 가운데 우울증 또는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나이, 암의 특성, 기존 질환, 복용 약물, 검사 결과 등을 포함한 49가지 특성을 고려하여 비교 집단을 구성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567명씩 두 집단, 총 3,134명의 기록이 비교됐습니다.
한 집단은 SSRI 계열 항우울제를, 다른 집단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을 처방받은 환자들입니다.
사망 비율은 얼마나 차이가 났을까요?
| 구분 | SSRI 복용군 | 벤조디아제핀 복용군 |
|---|---|---|
| 환자 수 | 1,567명 | 1,567명 |
| 사망자 수 | 368명 | 539명 |
| 관찰기간 내 사망 비율 | 23.5% | 34.4% |
| 두 집단의 단순 사망 비율 차이 | 10.9%포인트 | 비교 기준 |
시간에 따른 사망 발생 위험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위험비(HR)는 0.627이었습니다.
이는 SSRI 복용군의 사망 위험도가 비교군보다 상대적으로 약 37.3% 낮게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수치는 구별해야 합니다.
10.9%포인트는 관찰된 사망자 비율의 단순 차이입니다.
반면 **약 37%**는 시간에 따른 사망 위험을 분석한 상대적 위험비에서 계산한 수치입니다.
암 환자 모두의 사망률이 37% 감소했다거나,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생존 기간이 37% 늘어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이번 연구는 환자들에게 약물을 무작위로 투여한 임상시험이 아니라 기존 진료기록을 분석한 관찰연구입니다.
따라서 SSRI가 사망 위험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2. 우울증 약이 암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 연구를 이해하려면 먼저 면역항암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몸에는 바이러스나 비정상적인 세포를 찾아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있습니다.
그중 암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T세포입니다.
특히 CD8 T세포는 암세포를 인식하고 파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피하는 능력을 발달시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면역세포의 공격을 멈추게 하는 신호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사용하는 면역체계의 브레이크
T세포에는 PD-1이라는 단백질이 있습니다.
PD-1은 면역반응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는 조절 장치입니다.
일부 암세포는 PD-L1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T세포의 PD-1과 결합하면서 면역세포의 공격을 억제합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브레이크를 누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브레이크 작용을 차단하는 치료제가 면역관문억제제입니다.
대표적으로 키트루다라는 상품명으로 알려진 펨브롤리주맙이 있습니다.
이 약물은 PD-1에 작용해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신호를 차단합니다.
그러면 T세포가 다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면역항암제가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효과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암의 종류와 유전적 특징, 면역 상태 등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면역반응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3. 과학자들이 주목한 새로운 물질, 세로토닌
이번 연구의 중심에는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흔히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 등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기분과 수면뿐 아니라 소화, 대사, 면역 기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일부 항우울제는 세로토닌이 세포 안으로 다시 흡수되는 과정을 억제합니다.
이 약물이 바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즉 SSRI입니다.
세로토닌이 T세포의 활동에도 영향을 준다면?
2025년 미국 UCLA 연구팀은 세로토닌이 암을 공격하는 T세포의 기능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연구진이 조사한 것은 세로토닌 운반체(SERT)라는 단백질입니다.
SERT는 세로토닌을 세포 안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연구에서는 종양 안에 침투한 T세포에서 SERT가 항암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진은 SSRI로 SERT의 기능을 억제하면 T세포가 세로토닌 신호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해 암세포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존 면역항암제가 면역세포의 브레이크를 해제하는 방식이라면, SSRI는 다른 경로를 통해 면역세포의 활동을 도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설명은 연구에서 제안된 생물학적 기전에 관한 것으로, 사람에게서 동일한 치료 효과가 증명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4. 동물실험에서는 종양 크기가 50% 이상 감소
UCLA 연구팀은 여러 종류의 암을 대상으로 SSRI가 면역세포와 종양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연구에는 흑색종,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방광암 등을 대상으로 한 생쥐 및 인간 종양 모델이 사용됐습니다.
그 결과 실험 조건에서 SSRI를 투여했을 때 평균 종양 크기가 50% 이상 줄어드는 결과가 관찰됐습니다.
또한 일부 생쥐 모델에서는 SSRI와 PD-1 억제제를 함께 사용했을 때 항종양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특정 실험에서는 종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도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2025년 5월 발표된 Cell 논문에 보고됐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종양 크기 50% 이상 감소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의 치료 성과가 아닙니다.
실험실과 동물 모델에서 확인한 결과이며, 실제 암 환자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별도로 검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미 임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약물에서 새로운 작용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5. 그렇다면 SSRI를 암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이번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2026년 연구에서 SSRI 복용군의 사망 위험이 낮게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SSRI를 복용했기 때문에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무작위 임상시험이 아닙니다
연구진은 이미 진료를 받은 환자들의 의료기록을 비교했습니다.
49가지 특성을 고려했지만 모든 차이를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환자가 얼마나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하는지를 나타내는 전신수행상태(ECOG)는 충분히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생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둘째, 비교 대상 약물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SSRI 복용군과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환자 전체를 비교한 연구가 아닙니다.
주된 비교 대상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 복용군이었습니다.
이 계열 약물은 불안이나 불면 등에 사용되며,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처방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두 집단의 사망 위험 차이가 SSRI의 긍정적인 효과 때문인지, 비교 약물과 관련된 요인이나 환자 상태의 차이 때문인지 완전히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셋째, 면역 관련 부작용도 확인됐습니다
연구에서 SSRI 복용군은 면역 관련 이상반응이 더 많이 기록됐습니다.
특히 갑상선 기능 이상과 관련된 위험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면역반응 변화와 관련된 단서로 해석했지만, 치료 과정에서 안전성을 함께 검증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생존 가능성뿐 아니라 부작용과 약물 상호작용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6. 새로운 항암제 개발보다 기존 약물의 재활용이 주목받는 이유
의약품 개발에는 오랜 시간과 상당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후보 물질이 실험실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도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임상시험에서는 효과뿐 아니라 부작용, 적절한 용량,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이미 다른 질환에 사용되고 있는 약물에서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찾는 연구가 활발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을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이라고 합니다.
SSRI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왔습니다.
기존에 축적된 안전성 자료와 임상 경험은 새로운 용도를 연구할 때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에서 안전성과 효과가 확인됐다고 해서 암 치료에서도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면역항암제와 병용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7. 암 환자가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더 오래 살 수 있을까요?
현재 근거만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 연구는 특정 조건을 가진 암 환자 집단에서 SSRI 사용과 낮은 사망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앞으로 실제 치료 효과를 확인하려면 무작위 임상시험이 필요합니다.
연구진도 후속 임상시험을 통해 SSRI의 면역항암제 보조치료 가능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암 치료를 받고 있다면 이번 연구만을 근거로 항우울제를 새로 복용하거나 기존 약물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SSRI나 벤조디아제핀을 처방받고 있다면 임의로 중단하지 말고, 담당 의료진과 복용 목적 및 치료 계획을 상의해야 합니다.
항우울제 복용과 관련된 판단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암 치료 담당 의료진이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8. 이번 연구가 암 치료의 미래에 갖는 의미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항암제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다른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 약물이 암 면역반응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2025년 UCLA 연구는 세로토닌 운반체와 T세포 사이의 관계를 실험적으로 탐구했습니다.
2026년 대만 연구진의 분석은 실제 암 환자 진료기록에서 이에 부합하는 생존 결과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두 연구는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하나의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실 연구와 관찰연구에서 가능성이 발견됐다는 사실이 곧 새로운 암 치료법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어떤 암에서 효과가 있는지, 기존 면역항암제와 어떤 방식으로 병용해야 하는지는 앞으로 검증해야 할 과제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항우울제가 암을 치료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로토닌 신호가 암 면역치료의 새로운 연구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그 가능성이 실제 치료법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임상연구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 Chen P-H 외,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and immune checkpoint blockade in solid tumors, PLOS Medicine, 2026년 9월 29일.
- Li B 외, Serotonin transporter inhibits antitumor immunity through regulating the intratumoral serotonin axis, Cell, 2025년.
- UCLA Health, Common antidepressants could help the immune system fight cancer, 2025년 5월 21일.
-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Immune Checkpoint Inhibitors.
의료정보 안내: 이 글은 공개된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특정 의약품의 복용을 권장하거나 개인의 암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글이 아닙니다. 약물의 시작·변경·중단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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